학습/한국사

고2 한국사 : 사림의 성장과 사화 극복 (조선)

알 수 없는 사용자 2019. 6. 30. 03:55
728x90

■ 사림의 성장
- 15세기 중반 이후에 영남과 기호지방 지역을 필두로 성리학에 투철한 사족(사림)들이 성장.
- 중소 지주적 경제 기반을 갖고 있던 이들은 의리와 도덕을 바탕에 둔 왕도정치를 강요.
- 향촌 자치를 주장하며 사림 중심의 향촌 질서를 강화

- 중앙 정치는 세조의 즉위 과정에서 공을 세운 훈구세력이 장악.
- 훈구 세력은 고위관직 독점, 권세를 이용하여 막대한 토지 확장, 상업활동을 통한 재산 확산...
  이러한 과정에서 비리와 부정을 저질러 백성의 지탄 대상이 됨.

- 이 같은 시기에 사림은 성종 시기에 김종직을 필두로 중앙 정치 진출
- 주로 3사에서 언론과 학술을 담당하며 훈구의 비리를 비판하며, 독주를 견제.
- 성종은 훈구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사림을 적극 중용하였고, 한동안 사림과 훈구의 세력이 군형을 갖춤.

■ 사화

연산군 : 연산군이 즉위하자 훈구세력은 사림을 공격, 연산군은 자신의 실정을 비판하던 사림을 못마땅해 함.
             (무오사화 1498 : 김종직 "조의제문" / 갑자사화 1504 : 폐비윤씨사건)

중종 : 중종이 즉위하자 공을 세운 훈구들이 권력을 독점하고 재산을 확대.
            훈구를 견제하고자 중종이 조광조를 비롯한 사림들을 등용.

- 조광조는 사림의 여론을 앞세워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.
- 현량과를 실시하여 많은 사림을 언관과에 등용하여 언론과 경연을 활성화함.
- 도교행사를 추진하던 '소격서'를 폐지하고 "소학"을 널리 보급하여 유교 윤리를 확산하려 함.
- 백성들에게 부담되던 공물 제도를 개선하려 함.
- 과대평가된 훈구의 공을 위훈삭제하여 훈구의 경제 기반을 축소 시키려 함.
---------> 공신들의 반발로 기묘사화(1519, 조광조 개혁)가 일어나 조광조와 많은 사림들이 처형, 중앙 정치에서 쫓겨남.

명종 : 사림은 명종 시기에 을사사화(1545, 외척대립)을 겪지만, 서원과 향약을 기반으로 향촌에서 세력 확장.

선조 : 선조 시기에 사림들이 중앙에 대거 진출하여 정치적 실권 장악.